작성일
2010.11.19
수정일
2010.11.19
작성자
현대중국문화연구실
조회수
515

(이종민 서평) 인물로 보는 중국현대 소설의 이해

《인물로 보는 중국현대소설의 이해》

문학사의 시각과 운명 《인물로 보는 중국현대소설의 이해》에 대한 단상


田仲濟, 孫昌熙 주편,

김영문, 이시활, 조성환 외 공역,

서울: 도서출판 역락, 2002.10

신국판, 746쪽

이 종 민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현대사라는 말은 물론 역사 서술의 대상이 현대의 역사에 국한된다는 뜻이 아니다. 이것은 ‘지금 여기’에 있는 서술자(현대인)의 시각에 의해 과거의 사건들이 현재적으로 재구성된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떠한 사건도 객관적인 상태로 존재할 수 없으며 서술자의 해석을 거친 의미 있는 사건의 형식으로 기능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역사 텍스트를 독해할 때 관건이 되는 것은 서술된 사건 자체보다는 사건을 서술하는 역사가의 시각 혹은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문학의 역사를 다루는 문학사도 넓은 의미의 역사라고 볼 수 있다면, ‘모든 문학사는 현대문학사’라고 해석해도 가능한 일이 아닐지?

최근 田仲濟 ? 孫昌熙가 주편한 《中國現代小說史》(濟南, 山東文藝出版社, 1984)를 김영문 ? 이시활 ? 조성환 등이 공역하여 《인물로 보는 중국 현대소설의 이해》(도서출판 영락, 2002)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초에 한국에서 중국현대문학 연구에 입문한 이라면 누구나 한두 번쯤 펼쳐보았을 기본 텍스트였다. 그 당시 세계는 동구의 사회주의권이 붕괴되면서 전 지구적 자본주의체제가 형성되었고, 한국 역시 1980년대의 이데올로기 시대에서 벗어나 포스트 모던한 풍경들이 펼쳐지기 시작하는 그런 시점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중국현대문학 연구 계는 이러한 탈 이념적인 시대변화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여전히 문학의 사회적 실천에 관한 주제들을 주요한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었다. 이러한 풍토에서 사회주의 거대서사 및 민중담론에 기반하고 있는 중국 대륙의 도서들이 연구자들의 관심을 충족시켜 주었으며, 자연스럽게 이 책이 역시 중국현대문학연구를 위한 참고 목록 속에 포함될 수 있었다.

주지하듯이 이 책은 중국 대륙에서 출판된 최초의 중국현대소설사이다. 그러나 이 책은 문학사가 일반적으로 따르는 편년사의 형식을 취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이 책은 5 ? 4시기에서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성립 이전까지 30년의 시간동안 창작된 인물형상을 지식인, 여성, 노동자, 농민, 혁명가, 시민, 역사인물, 기타 인물형상으로 나누고, 매 인물 형상의 변천과정을 5.4시기 중심의 반봉건 문학시대(첫 번째 10년), 좌련 중심의 혁명문학시대(두 번째 10년), 반제국주의적인 민족문학 시대(세 번째 10년)의 역사 속에서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이 책은 독자들이 중국현대문학사 공간 속에 출현했던 무수한 인물 형상들의 삶의 역정을 총체적으로 조망하거나 동일한 인물형상의 계보 및 변모과정을 역사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지도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책이 제공하는 지도가 1980년대적 맥락에서 그려진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개혁개방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는 1990년대 이후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사유방식과 지식체계가 요청됨에 따라 중국 연구자들의 글에서 이 책에 대한 인용 빈도수가 줄어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탈 근대적 ? 탈 이념적인 학문세계를 추구하는 최근의 한국 연구자들에게 있어서도 이 책에 대해 알고 있거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은 형편이다. 세월의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필자가 이 책의 출간 소식을 접했을 때 약간 의아해했던 것도 망각의 시간에 파묻혀 그 유효성이 일정정도 지나버린 이 시점에서 세상에 선을 보인다는 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세간의 관심 여부에 상관없이 이 책이 역사적인 자기소명 및 시대의식을 담지하고 있는 텍스트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의 문학사 구성원리가 신민주주의사관에 입각한 속류 사회학주의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는 측면에서 볼 때 이것은 분명 지양해야 할 관점이다. 그러나 후세의 비판 역시 문화대혁명의 전제 주의적 경향을 극복하는 것이 이 책의 시대적 요청이었다는 사실 속에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노신의 작품 및 소수의 홍색경전만을 승인하고 그 나머지는 관심 밖으로 추방해버린 문혁 시기의 연구풍토를 탈피하는 것이 당시의 최대 과제였다는 것이다. 1980년대 연구자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현대문학을 옭아매고 있는 문학사 관념의 재구성 혹은 ‘문학사 다시 쓰기’ 작업을 수행해나간다. 그들은 이념의 무덤으로 변질되어버린 현대문학사 공간 속에 들어가 작가, 작품, 문학단체, 문학논쟁, 문학교류사 등의 문제를 재해석하고 그 역사적 의미를 복원시킨다. 이 책은 현대소설사 방면에서 ‘문학사 다시 쓰기’의 선성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 작업의 이론적 총결이라고 평가받는 錢理群, 黃子平, 陳平原,의 ‘20세기 중국문학사론’도 이러한 선행업적의 기초 위에서 가능했던 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복원한 문학사(소설사) 원리 역시 신민주주의사관의 틀을 벗어나지는 못한다. 그래서 이러한 역사관에 의해 해석된 문학사는 신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문학발전 과정을 걸으며, 그 속의 인간은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규정적인 삶을 추구하게 된다. 이렇게 한정된 역사 속에서는 시대와 삶을 고뇌하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역사의 해석은 다양하게 공존하는 삶들이 접촉하고 소통하는 과정 속에서 그 존재의미들을 밝혀내고 확장하는 것이지, 해석의 권위를 빌어 광활한 역사공간을 구획하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령 이 책은 사회적 현실과 인물형상의 관계를 주된 분석대상으로 삼아서 그 매개체인 작가의 문제를 소외시키며 그 자리를 문학사가의 시각이 대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작품 해석의 다층성 보다는 도식적이거나 정태적인 측면이 강하게 노출되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시대적 한계에 대해서는 후세들뿐만 아니라 후기를 쓴 손창희 역시 직감하고 있었다. ‘우리들은 이 책에서 이러한 점에 대한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인물형상의 창작 동기나 그 속에 함축된 작가의 개성을 찾아내기 어려웠으며, 다층 차적인 인물형상의 심령 속 깊은 곳도 파헤칠 수 없었다. 또한 작가의 개성이나 창작경향도 변화하는 것이며, 이것은 곧바로 그가 창조한 인물에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고 거기에 따라 소설 인물형상사의 변화도 결정되는 것이다. 자연히 이것은 어렵고도 거대한 사업이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극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최초의 작업이라는 차원에서 이 책은 종종 중국계 미국학자 C.T.Hsia(夏志淸)이 1961년에 쓴 《A History of Modern Chinese Fiction(中國現代小說史)》와 비교된다. 이 책의 주편자들 역시 夏志淸의 《中國現代小說史》가 자신들의 저작 이전에 쓰여 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손창희의 말대로 夏志淸이 중국인이 아니라는 점과 마르크스?레닌주의 문예이론에 입각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인지 이 책 속에는 夏志淸의 《中國現代小說史》와 대화하고 있는 측면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당연히 서로 입각하고 있는 현실적 맥락과 이념적 제약으로 인해 소통 자체가 불가했을 것이다. 夏志淸의 관점 역시 서구 근대중심주의적인 역사관을 바탕으로 문학의 근대문명 비판 기능에 치중하는 ‘편향’이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민족위기와 같은 중국 현실의 특수성보다는 보편적인 근대비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작가와 작품을 주된 분석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夏志淸의 《中國現代小說史》가 이 책보다 생명력이 긴 것을 세계를 바라보는 ‘문학적’ 시각에 더욱 충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두 저작의 운명은 판이하다. 최초라는 이름이 붙은 동일한 《中國現代小說史》가 현재에 수용되는 상이한 운명을 놓고 볼 때, 문학사는 사료의 풍부함만으로 가능한 작업이 아니며 사료를 재구성하는 문학사가의 시각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음미해 볼 만하다.

현재 중국에는 중화민족의 역사를 통합적으로 바라보려는 시각이 흥기하고 있다. 이것은 개혁개방 이후 대륙과 홍콩 ? 台灣의 경제관계가 확대되고, 동남아시아의 화교자본이 유입되며, 홍콩과 마카오의 영토가 반환됨에 따라, 중국 내부에서 민족적 동질성을 확립해야할 필요성이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민족 통합의 시대적 요청으로 대륙 중심의 이데올로기적 역사 서술이 지양되고, 중화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중화민족 통합 문학사 및 해외 화교문학사 등을 연구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것은 1980년대의 일국적 차원에서 수행된 ‘문학사 다시 쓰기’와 달리, 전 지구적 자본주의체제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중화민족의 문학 활동에 대한 역사 해석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중국의 문학사 쓰기가 어떠한 범주적 차원에서 재구성되며 어떠한 방식으로 서술되고 있는가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학사 속에는 동시대 중국인의 관심과 시각이 내재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통해 중국이 걸어가고 있는 길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종민, <田仲濟 ? 孫昌熙 주편, 김영문?이시활?조성환 외 14인 공역,《인물로 보는 중국현대 소설의 이해》>,《중국어문학》40집, 경산: 영남중국어문학회, 2002.12, pp.495-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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