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0.11.19
수정일
2010.11.19
작성자
현대중국문화연구실
조회수
354

(김영철 서평) 중국현대문학과 현대성 이데올로기

《중국 현대문학과 현대성 이데올로기》


정진배 지음

서울: 문학과지성사,2001.1.

김 영 철

  이 책은 압축된 생각을 밀도 있게 전개한 매우 난해한 논문으로 구성돼있다. 저자는 해석학을 원용해 역동적인 관점으로 문제에 접근하며, 특이하고 난해한 문체를 구사하고, 다양한 참고자료를 자유롭게 인용하며 현란하게 논지를 전개한다.

중국뿐 아니라 동양에서 현대성을 논의할 때 어쩔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왜냐하면, 불가피하게 ''현대''라는 시대를 만든 서구의 ''현대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국의 ''현대성''에 대해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서구의 기준을 중국(동양)이 받아들인 족적을 찾아보는 방향이다. 이는 서구 중심의 내러티브를 내면화한 흔적을 찾아보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서구의 모더니즘을 직접 이식하려 했던 움직임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중국대륙의 경우는 신감각파(1920년대 말,19 30년대 중반)의 출현, 《現代》잡지의 출간(1932~1935) 그리고 시집《今天》(1978~80)의 출간, 좀더 나가면 선봉파(1980년대 중반)의 출현이 될 수 있고, 대만의 경우는 1950~60년대의 《現代》잡지의 출간 등을 들 수 있겠다. 이 책의 저자는 신감각파의 경우는 지엽적 현상(p.225)이고, 1960년대 대만의 《現代》지를 중심으로 한 모더니즘 운동은 도피주의적 경향을 대변한다(p.213)고 저평가하고 있다.

둘째는 서구의 현대성이 이식된 것만이 아니라 중국에서도 자체적으로 맹아 했었다고 주장하는 경우이다. 드 베리(De Bary)가 현대성의 특성 중의 하나인 독립된 ''개인''이 明대 양명학의 주된 논제라고 주장했고, 프루섹(Prusek)이 주관화 경향이 중국 현대의 시대적 과정 속에 내재해 있었다며 자생적 근대성론을 주장한 것이 이런 경우이다. 저자는 이 주장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수긍하지 않는 것 같다.(p.158) 이 주장은 서구의 우월성에 대한 반론으로서의 의미가 있지만 역시, 서구의 기준을 현대성의 기준으로 보는 기본 전제는 부정하지 못하는 시각이다.

마지막 하나는 서구의 기준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중국의 주체적인 현대화 방향을 찾는 것이다. 거칠게 예를 들면, 정치적으로는 毛澤東의 노선이나 鄧少平 노선 등이 그것일 수 있다. 즉 농민 위주의 공산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시장경제란 중국적인 현대화 기준을 새롭게 인정하는 방향이다. 그들이 만든 중국 현대사는 비록 서구의 현대성의 기준에는 맞지 않지만, ‘현대’라는 시대에 그들이 찾은 자신들의 길이기 때문이다.

  이상의 논의 방향은 단순한 이론 차원이 아니라 복잡한 역사의 짐도 함께 지니고 있다. 반식민지 상태에 있었던 중국의 경우도 서구적인 것과 비서구적인 것,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과 옥시덴탈리즘(Occidentalism), 중심부와 주변부, 근대와 전근대 사이에 화해하기 힘든 갈등이 존재한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 하에서, 중국 현대 문학의 ‘현대성’은 단순히 문학만의 차원이 아니라 역사와 혁명의 굴곡까지를 포함하게 된다.

이런 상황을 잘 아는 저자는 현대성의 개념에 대해 직접 논의하지 않고 있다. 저자는 위의 세 방향에 대해 모두 유보적인 입장에서 논의를 전개한다. 저자는 중국 현대 문학의 문 현상 중, 주요 특성을 사회사적 매갈에서 검토하고 그것을 중국 문학의 현대성의 명제와 연결시키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P.212) 이 방법은, 저자가 즐겨 원용하는 해석학의 방법이기도 하고, 협의의현대성 개념의 구속에서도 벗어나, 좀더 광범위하게 중국 현대 문학을 논의하기에도 편리한 이점이 있다.

책의 서문으로 저자는 茅盾의 논문 <讀兒煥之>를 메타 코멘터리하고 있다. 즉 茅盾이 葉聖陶의 작품 《兒煥之》를 읽고 쓴 서평을 다시 평가함으로써 서문을 대신한 것이다. 제임슨의 그림자가 언뜻 보이는 이채로운 시도이다. 그리고 茅盾의 《子夜》를 분석한다. 저자는 다양한 인용과 현란한 분석을 전개하는데, 그 근본 시각은 문학과 역사 혹은 시대현실과의 관계로 좁힐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현대성’을 서구 문학 사조나 기법의 이식 또는 활용보다는, 문학과 역사 현실과의 관계 속에서 찾는다는 것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제 1장의 1절에서 저자는 胡適, 陳獨秀, 梅光迪, 錢玄同 등의 백화문 논의들을 재구성하고, 그 속에 내재한 특정한 의미를 추적하고 있다. 결론은 5.4 백화문 운동이 언어라는 매체를 통해, 현대적인 새로운 주체로서 ‘민중’을 세우려했으나, 실재가 부재하거나 소외된 채 모두 이데올로기적 차원에 머물렀고, 1930년대 좌련의 瞿秋白도 민중언어라는 형식을 통해 다시 주체를 세우려 했으나, 이도 지시적 기표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즉, 주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로 만들어졌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p.81)

2절에서도 저자는 魯迅의 <악마파 시의 힘>에서 창조된 초인의 “소리”를 민중이 공감하지 못하고, 궁극적으로는 숭고한 주체로 설정된 초인이나 민중 모두 언제나 실체가 없는 주체로서만 존재한다고 지적한다.(P.110)

3절에서 저자는 중국 현대문학의 비판적 리얼리즘과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서사구조의 이데올로기적 의미를 비교한다. 비판적 리얼리즘이 구체제의 파괴를 위해 전략적으로 채택된 주체(주인공)가 낭만적인 죽음을 통해 구체제가 실재한다는 것을 폭로하는 구조를 지닌다면(p.134),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역사 자체를 의미가 부재한 텍스트로 간주하고 그 속에 자의적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역사관을 지닌다(p.144)며 역시 그 실재가 부재하다고 말한다.

제 2장에서 저자는 중국 현대성을 규정하는 주제의 하나인 근대적 자아를 鬱達夫의 <沈淪>을 통해 분석하는데, 역시 후반에 사적 자아(성)의 문제에서 돌연히 공적 자아(민족) 문제로 옮겨지는 것은 중국의 근대적 자아가 환경과의 일정한 영향 관계 속에서 불가피하게 탄생된 개념이라기보다, 중국의 봉건 전통을 타파하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채택된 자아임에 불과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중체서용론도 ‘중체’를 근본적으로 현대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서용’적 차원의 시도에 불과하고, 創造社 동인들의 갑작스런 변화도 낭만과 혁명의 기질적 유사성 때문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문학을 정치에 복무시키려는 문학 외적 목적성에 입각한 것으로 본질적인 의미 변화는 없다고 분석한다.(pp.178-180)

저자는 또 沈從文, 茅盾, 魯迅 의 작품을 예로 들면서 도시와 시골, 신과 구, 엘리트와 민중의 관계를 통해 중국 현대성의 양면성을 지적하고 있다. 현대를 상징하는 도시에 대해서는 도덕적 문제를 제기하고, 전근대를 대표하는 시골을 낙후성은 지니지만 윤리의 보고로 설정하는 등 양면성을 보이며, ‘신’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밝혀내지 못하는 모호한 상태에 머물며, 엘리트와 민중은 여전히 이분법적으로 차별된 채 남겨져 있다고 지적한다.(pp.196-197) 저자는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와 양면적인 태도는 조야한 사회 진화론의 수용에 기인하며, 서구 문명의 진보된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자본주의의 해악과 1차 세계 대전 발생)으로 인해 중국 지식인들이 서구의 현대 문명을 받아들이는 것에 곤혹스러워 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저자는 또 대만의 향토문학과 沈從文의 향토문학이 시골을 윤리의 보고로 설정하는 등의 반 현대적 특징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현대성의 의미를 폭넓게 확대하는 가능성을 제시한다고 평가한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저자가 말한 바와 같이, “날아가는 새의 자취가 흔적 없이 사라지고 허공만 남은”(p.22)느낌이 든다. 그것은 왜일까?

이는 백화문이나 瞿秋白의 민중언어도 실재한 민중의 언어가 아니고, 엘리트도 근대적 자아를 지니지 않으며, 민중도 부재하고, 역사적 글쓰기도 자의적이며, 서구의 현대문명에 대해서도 양면적인 태도를 보이고, 문학을 정치에 복무시키는 등 결국 중국의 현대문학에는 현대성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대성의 조건이란 것이 근본적으로 말하면, 19세기 서구에서 중산 계층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노블과 리얼리즘(P.195)의 출현, 그리고 19세기말과 20세기 초 자본주의와 자연 과학 기술 진보의 부정적인 측면에 반발한 부르주아 예술인 모더니즘(P.211) 등을 염두에 둔 서구적 기준과 다르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자생적 차원을 이성적 상황에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현대라는 시대에 중국 지식인이나 문인들이 고민하며 추구했던 시도나 노력들이 모두 아무 의미가 없단 말인가? 역으로, 민중이 실재하고 엘리트도 문제적 자아이고 민중도 실재하며 민중 언어도 확보하는 등 서구적 현대성의 조건을 만족시키는 그런 현대가 중국에 언제나 올수 있단 말인가? 20세기 현대를 살아 온 13억 중국(동양)의 시대는 없고, 그 문학의 현대성은 없다는 말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는 사실이 그렇기도 하지만, 사실을 분석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분명 한국의 중국 현대문학연구에 획을 긋는 역작이다. 특히, 방법론이 약한 한국의 중국 문학 연구에 새로운 길을 제시한 점은 아무리 높게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난해하고 밀도 있는 글을 읽느라 애를 먹었지만 배운 바가 많았으며, 평가에 적잖은 착오가 있지 않을까 우려된다.

 김영철, <정진배 지음,《중국현대문학과 현대성 이데올로기》>,《중국어문학》43집, 경산: 영남중국어문학회, 2004.6, pp.416-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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