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0.11.19
수정일
2010.11.19
작성자
현대중국문화연구실
조회수
407

(최재봉 기사) 하늘가 바다끝

《하늘가 바다끝》

중국 현대수필의 아름답고 슬픈 심상


스티에성 외 39인 지음

김혜준 옮김

서울 : 좋은책만들기, 2002.5.22.

최 재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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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중국 현대 수필을 모아 놓은 《하늘가 바다끝》(김혜준 옮김, 좋은책만들기 펴냄)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특히 맨 앞에 실린 스티에성(51)의 〈나와 띠탄(地壇)공원〉은 50쪽이 넘는 꽤 긴 글임에도 밀도와 완성도가 높은 인상적인 글이었다. 스무 살 젊은 나이에 하반신불수가 된 뒤 실의에 빠져 지내다가 휠체어를 굴리며 집에서 가까운 공원을 찾기 시작해서부터 15년간 공원에서 보고 느낀 이런저런 일들을 반추한다. 몰락한 명문가 출신으로 보였던 노부부, 매일 아침 공원에 와서 노래를 부르던 동년배 청년, 술꾼 노인과 새 잡는 사내, 연습 중인 육상선수 들과의 만남과 이별이 회고된다.

 그들 중에서도 작가의 마음에 가장 강하게 남아 있는 이는 예쁘지만 불행한 소녀이다. 모감주나무 아래에서 열매를 줍던 세 살짜리 귀여운 소녀는 십여 년 뒤에 다시 보니 정신박약에 걸린 상태였다. 그 자신 장애를 겪고 있는 작가는 이 예쁜 소녀에게 내린 시련을 보면서 “세상사는 때때로 하늘의 의도를 의심케 한다”고 쓴다. 그러나 그는 곧 이어 “만일 세상에 고통이 없다면 이 세상이 존재할 수 있을까?” 반문한 다음 그에 대한 나름의 답을 내놓는다: “차이가 모두 사라진 세상은 한 줄기 썩은 물이 되고 말 것이요, 아무런 감각도 없고 비옥함도 없는 한덩어리 사막이 되고 말 것이다.” 자신과 소녀의 운명을 수긍하는 것이다.

  이 글에서 특히 아름다운 부분은 사계절을 마음 상태에 비유한 다음 대목이다. 길지만 인용해 둔다.

  “봄은 와병의 시절이다. 그게 아니라면 사람들은 봄의 잔인함과 갈망을 쉽게 깨닫지 못할 것이다. 여름, 연인들은 마땅히 이 계절에 실연해야 한다. 아니라면 사랑에게 미안할 것이다. 가을은 타향에서 화분을 하나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시절이다. 오래 떠나 있던 집으로 그 꽃을 가져가 창문을 활짝 열어 햇빛이 집안 가득하도록 한 다음, 하나하나 추억을 더듬어가며 곰팡이 슨 물건들을 천천히 정리하는 것이다. 겨울은 화로와 책과 더불어 한 차례 또 한 차례 굳고 굳은 결심을 되풀이하며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쓰는 것이다.”

  대만의 여성작가 리후이미엔(32)의 〈비워놓은 답안〉은 짧지만 아름답고 슬프다. 평상시 시험에서는 늘 백점을 맞다가도 정식 월말고사에서는 꼭 마지막 한 문제를 비워놓았던 초등학생의 비밀이 이 글의 주제이다. 두 다리가 불편했던 이 아이는 반에서 1등을 하게 될 경우 절름거리는 걸음으로 앞에 나가 상을 받게 되는 사태를 피하고자 답지를 비워놓았던 것이다. 이밖에도 중국이 대륙과 대만으로 분단되면서 헤어졌다가 무려 반세기 만에야 상봉한 모녀와 형제의 이야기를 다룬 글들은 우리에게도 꼭 같은 실감으로써 다가온다.

  최재봉, 〈중국 현대수필의 아름답고 슬픈 심상〉, 《한겨레신문》, 2002.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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