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0.11.19
수정일
2010.11.19
작성자
현대중국문화연구실
조회수
483

(김혜준 서평) 천년의 정원

《천년의 정원》
''중국판 유홍준''의 유혹과  함정


위치우위 지음
유소영 외 옮김
서울: 미래M&B, 2003.5.
                                                                                                                                                                                          

김  혜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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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치우위(1946-    ), 그는 1990년대 초반 중국의 유홍준이었다. 그가 잇따라 내놓은 《중국문화유산답사기》, 《천년의 정원》, 《세계문명기행》 등은 각각 수십만 부가 넘게 팔리는 베스트셀러였다.
  그의 수필은 대개 명승고적을 소재로 한 기행문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여행의 과정에 대한 기록이나 여행지에 대한 묘사는 그리 많지 않다. 그 대신 주로 자신의 사고와 감회를 서술한다. 이 책, 《천년의 정원》에 실린 글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수필은 그 자신이 주장하는 대로 단순히 고적 답사기나 여행 수필이 아니라 ''문화 수필''이다. 그는 수필을 통해서 새로운 중국 문화의 창조를 호소하고 그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그가 보기에 중국의 고대문화는 미개·야만과 문명이 뒤엉켜 있는 존재다(이는 19세기 미국의 인류학자 Lewis Henry Morgan에게서 빌려온 개념이다). 그는 그 미개·야만적인 요소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비판한다. 중원에서 머나먼 만주나 하이난섬에 유배를 간 문인, 학자들을 동정하면서 사회적 강압에 의한 집체의 유지와 개체의 멸실을 고발하는 것이 그렇다. 횡포하거나 무능한 군주, 잔머리를 굴리며 일신의 이해에만 집착하는 소인배를 비난하면서 사회 문화 시스템의 불합리와 비효율을 언급하는 것 또한 그렇다. 반면에 그 문명적인 요소에 대해서는 최대한 긍정한다. 강희 황제의 건전한 인격, 명석한 두뇌, 강인한 체력, 진취적 기상, 합리적 행동을 높이 칭송한 것이 그렇고, 산시 사람들의 역동적, 개방적, 개척적 정신과 실천력을 찬양한 것이 그렇다.
다만 그의 이러한 시도는 그리 성공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 자신이 혼란 속에 있기 때문이다. 고대문화에 대한 애정과 애착이 그 부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것에 대한 이성적 판단에 앞서다보니, 이지적으로는 현대문화에 대해 수긍하고 인정하면서도 정서적으로는 고대문화에 대한 집착과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모순적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이로 인해 그의 수필을 통해 파란만장하고 고색창연한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향유할 수도 있고 약간의 교훈을 얻을 수도 있지만, 현실의 살아 숨쉬는 중국인과 격동하는 중국이 새롭게 만들어내야 하고 만들어내고 있는 문화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호하게 느껴질 뿐이다.
  어쨌든 간에 그의 글은 술술 잘 읽힌다. 우선 그의 매끄러운 문체가 큰 몫을 한다. 이는 우리말로 옮겨 놓아도 거의 그대로다. 더러 중국식 어투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옮긴이들이 가진 능력과 들인 노력이 짐작된다. 그런데 그의 글이 잘 넘어가는 데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의 수필이 소설적인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동파, 포위를 뚫다〉를 보라. 발단, 전개, 절정, 반전, 대단원 식의 소설적 구성이다. 인물들이 대화하는 장면이나 행동하는 장면은 전적으로 상상력을 동원한 소설적 묘사다. 다른 수필도 마찬가지다. 혹시 소설적 구성을 취하지 않을 경우에도 그 속에는 반드시 수많은 이야기들 주로 옛날 이야기들이 삽입되어 있다. 그러니 어찌 흥미진진하지 않겠는가.
일반적으로 수필은 허구적인 이야기나 짜 맞춘 플롯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상상에 의한 서사를 통해 삶의 태도나 인생의 이상을 전달할 필요도 없다고 주장된다. 그렇지만 수필에 대한 이런 관념은 허구성을 배제하고 진실성을 강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칫 문학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상상마저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런데 마침 그의 수필은 상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간혹 상상과 허구의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가 있다. 다수 중국 비평가들은 이 점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상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은 확실히 수필에 또 하나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다.
  그의 수필에는 학자들의 수필이 흔히 그렇듯 지식이 넘쳐난다. 수시로 동서양의 저명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일화나 저술이 언급된다. 또 다량의 시(한시), 전고, 고사에다가 국내외의 갖가지 뉴스나 에피소드까지 활용된다. 그가 언술하는 것들 중에는 상식적인 수준의 것도 적지 않고 잘못 알고 있는 것도 없지 않다. 하지만 아무튼 그가 학자라는 사실과 더불어 이러한 풍부한 지식의 적절한 활용은 독자로 하여금 무의식중에 그의 학식과 판단에 경복하게 만든다.
  따지고 보면 그의 수필이 크게 호응을 받았던 데는 그의 수필 자체가 가진 매력 외에도 그 즈음의 사회적 상황에 적합했다는 것이 큰 역할을 했다. 그 무렵 중국에서는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추진됨으로써 자본주의적 요소가 확산되고 있었고, 국가적 역량이 증대됨으로써 정체성과 자신감의 확보가 요구되고 있었으며, 본격적으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됨으로써 그에 상응하는 대외적 관심이 제고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의 수필이 때로는 분명히 때로는 은연중에 이데올로기보다는 경제적 논리를 찬성하고 공정한 경쟁이라는 전제 하에 빈부의 차이를 인정한 것이라든가, 현대사회에 대한 이성적 적응과 더불어 고대 중국으로부터 자부심을 확립하고자 한 것, 그리고 중국인의 개방적, 개척적, 적극적인 대외 태도를 찬양한 것 등등은 그야 말로 중국의 독자들이 원하던 바로 그것이었다.
  우리나라 독자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이 책을 읽으면서 문화적인 기품을 향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생과 자연에 대한 사색에 침잠해볼 수도 있을 것이고, 중국 고대 문화와 인물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에 빠져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을 때는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 그의 글은 호오가 분명하고 시비가 명쾌하다. 그런데 그러한 단호한 언급에는 가끔 논리적 비약이 작용하고 있고, 확신에 찬 설명에는 종종 지나친 단순화가 기능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의 언변과 분위기를 순순히 따라가다 보면 현실의 중국인들이 몽땅 증발해버릴 우려가 없지 않다. 패스트푸드점을 들락거리는 얼굴 뽀얀 어린이도, 밤새껏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거나 나이트클럽에서 흔들어대는 젊은이도, 컴퓨터 팩시밀리 따위에 둘러싸여 서류에 코를 박고 있는 중년도, 공원에서 에어로빅을 하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김혜준,  〈''중국판 유홍준''의 유혹과  함정〉, 《북&이슈》 2003  창간호, 서울: 한국출판인회의,  2003, pp.11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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