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0.11.19
수정일
2010.11.19
작성자
현대중국문화연구실
조회수
543

(유세종 서평) 루쉰

《루쉰》



루쉰(다케우치 요시미)



다케우치 요시미 지음, 서광덕 옮김
서울: 문학과지성사, 2003.10
                                                                                                                     

유 세 종

이 책은 다케우치 요시미(竹內好)의 《루쉰》을 우리말로 완역한 것이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2차 세계대전 전후 일본 중문학의 태두였으며 일본 근대비판의 독특한 경지를 연 학자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그의 루쉰(魯迅) 연구는 다케우치 자신의 현실 인식과 현실 비판의 근거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근대에 대한 동아시아 지식인의 사유의 한 유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현재에도 그 가치를 지닌다.
  이 책은 다케우치 요시미(1910-1977)가 33살 되던 1943년에 탈고된 원고를 1943년 겨울, 전쟁에 징용되어 나가면서 친구에게 유언처럼 맡겨졌다가 친구에 의해 1944년에 출간된 책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일본이 한창 중국을 침략하던 때에 쓰였고 출판된 셈이다. 1937년 7.7사변이 발생한 직후, 다케우치는 10월 베이징으로 유학을 갔다. 당시 그는 일본의 침략으로 베이징 시민이 거의 빠져나가 텅 비게 된 베이징을 목도하게 되었는데, 여기서 그는, “베이징이 ‘무력하다는 것’을 느낀 후에 그 주의력을 자기 쪽으로” 돌렸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전 일본 학계에 의심을 품기 시작하였고, 일본이 중국을 침략한 의미에 대해 회의하기 시작하였다.” 그러한 정치적 시대환경 속에서 그는 자신이 공부하고 있는 문학의 궁극적인 의미와 문학과 정치의 관계를 고민하게 되는데 이 책은 이러한 내외의 배경 하에서 나온 것이다. 그가 직접 말하는 루쉰 연구의 동기를 들어보자. “당시 중국 문학은 중공 지구의 문학, 충칭 지구의 문학, 일본군 점령하의 여러 도시의 협력자 문학 등이 있었고, 맨 뒤의 것은 일본의 문단에서 대대적으로 찬양을 받았다. 그것은 전통과 무연(無緣)하며, 정통의 문학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고, 또 그것을 논증할 만큼 충분한 자유중국(즉 중화민국)의 작품을 입수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24.주2) 그는 그 답답한 마음을 루쉰 연구에 기탁해서 토로하고자 했던 것이다.
  저자는 루쉰과 선의의 대결의식을 가지고 있다. 가령 “루쉰이 처녀작 〈광인일기〉를 썼던 것은 서른여덟 살 때다. 그리고 내가 서른여덟 살이 되기까지는 아직 약간의 시간이 있다.”와 같은 의식이 그것이다. “처녀작을 쓸 때부터 청년들에게 호소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이 불행한 노작가의 슬픔을 나는 내 힘으로 이해할 작정이다. 호소 당했던 한사람인 내가 그것을 이해하려는 것은 소리를 질렀던 상대방이 완결된 체계로 나의 앞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루쉰을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과연 나는 루쉰을 이해했던 것일까  완결되었다고 생각한 상대방이 뜻밖에도 그곳에 없는 것은 아닐까  하고 자신의 루쉰 인식에 대해 의심한다. 그에게 있어 루쉰은 움직이는 루쉰, 움직이는 지표(指標)와 같은 것이었다. 시종일관 그는 루쉰의 위치를 가늠하기 위해 애쓴다. 그는 “그저 말을 도구로 해서 루쉰의 위치를 결정하고자 한 것이다. 루쉰이 있는 곳의 주위를 말로 채우고자 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상대방의 위치를 놓치지 않는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만약 놓친다면” “나는 나의 언어가 사어가 될까봐 두렵다.”(129)고 고백한다. 루쉰과의 대결의식, 루쉰으로부터의 ‘방법 학습’에 대한 열망, 루쉰에 대한 의혹과 애정이 이 책 전편에 수미일관 관통하고 있다. 그는 루쉰의 《고사신편》을 모두 실패한 작품이라고 하고는 다시 작품의 세계로 들어가 이것저것 그 장점과 특징들을 거론하고 다시 “솔직히 나로서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이다. …나는 지금도 80퍼센트 정도는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남은 20퍼센트에 혹시 라는 의혹이 남는 것은 아무리 해도 부정할 수 없다.”고 토로한다. 이렇듯 그가 루쉰에게 접근하는 경로는 치밀하고도 집요한 회의와 부정, 그리고 다시 긍정에서 회의로 이어지는 방법이다. 루쉰의 원형, 루쉰의 근원에 접근하고자 하는 저자의 방법 그 자체가 매우 ‘루쉰적인 방법’인 것이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그가 이 책에서 시도하고자 하는 것은 단지 한가지, 루쉰의 위치를 결정하는 것, 즉 루쉰의 사상과 작품행위와 일상생활과 미적인 가치가 아니라, 그런 잡다한 것들을 가능케 한 어떤 본원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규명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 본원적인 것을 그는 回心이라고 부른다. 루쉰의 회심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것, 그것이 이 책의 집필 목적이다. 회심이란, 그곳에서 루쉰 그 자체를 가능케 했던 어떤 원리적인 것, 루쉰을 현재적으로 성립케 했던 근원적인 어떤 것이다. 이 책은 그것을 찾는 작업의 결과물이다.
  그는 루쉰을 사상가나 계몽운동가가 아니라 문학가로 보았다. “절망에 절망했던 사람은 문학가가 되는 수밖에 없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못하고, 누구도 자신의 기둥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전체를 스스로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문학가 루쉰은 현재적으로 성립한다.”(130)가 그것. 그렇기 때문에 루쉰이 다채로운 모습으로 현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를 문학가로 가능하게 했던 내적 동력, 근원이 무엇일까  다케우치의 현란하고 복잡한 사유경로를 통해 도달한 지점, 그의 결론은 이렇다. “현상적으로 루쉰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계몽가다. 무엇보다도 문학가이며, 동시에 뛰어난 계몽가”라는 것, 그러나 “문학가 루쉰이 계몽가 루쉰을 무한히 생성케 하는 궁극의 장소”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문학가 루쉰을 가능케 했던 그 궁극의 장소에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호명한다. 죽음, 속죄의식, 비애, 적막, 절망, 민족적 굴욕감, 문학 무력감, 허무, 고통과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그를 “문학가라는 것 외에 달리 부를 수 없는 근본적인 하나의 태도가 그에게 있”는데 그것이 고통이라는 것. 그의 고통은 소설이나 비평 속에 대상 세계를 재구성하지 못할 정도로 깊었으며, “〈열풍(熱風)〉,〈화개집(華蓋集)〉뒤로 이어지는 일련의 잡감집은 그 고통이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그는 루쉰이 “고통의 표출을 위해 논쟁의 대상을 구했다”고 보았다. 소설 속에 다 토해내지 못한 고통을 치유할 장소를 논쟁에서 구했고, 논쟁으로 그는 온갖 계층의 사람들을 적으로 삼았으며, 그들에게서 비웃음을 샀다고 보았다. 보다 못해 동정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그 동정하는 자의 동정하는 태도에 대들었다. 결국 편집광적이 되었다. 구제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대항했던 것은 실은 상대가 아니라, 그 자신 속에 있는 어찌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는 것, “그는 그 고통을 자신에게서 뽑아내어 상대방 속에 두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과 싸우는 것이 그에게는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논쟁은 본질적으로 문학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그는 말한다. “작가가 작품 속에서 하는 것을 그는 작품 밖에서 한 것이다. 비평가가 비평의 세계를 세우는 것과 동일하게 그는 논쟁으로 세계의 밖에 세계를 구축했던 것이다. … 그는 그 자신이 소외한 자기 이외의 것과 논쟁을 통해서 대결한다. … 논쟁은 그러한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열 손가락을 넘는 잡감집은 그 기록으로써, 작품 아닌 작품이다.”(133) 다케우치는 여기서 근본적인 문학가의 길을 간 루쉰의 내면을 탁월하게 보아냈을 뿐만 아니라 루쉰 잡문이 지닌 문학성의 근원을 예리하게 해부하고 있다.
  그는 또 절망에서 루쉰의 회심처를 발견한다. 사람이 ‘절망’과 ‘희망’을 설명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희망이 허망한 것처럼 절망도 허망함을 자각한 사람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태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루쉰에게 그 태도를 부여한 것이 〈광인일기〉이고, 〈광인일기〉가 근대문학의 길을 열었던 것은 구어의 해방도 봉건사상의 파괴도 그 무엇도 아니라는 것. 그는 ‘이 유치한 작품’ 때문에 루쉰의 어떤 근본적인 태도가 자리잡혔다는 데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광인일기〉의 작가는 소설가로 발전하지 못하고, 오히려 소설을 소외하는 것으로 자신의 작품에 대한 속죄를 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라고 본다. 〈광인일기〉는 한사람의 문학가를 가능케 했지만, 동시에 ‘나는 장차 오르내리며 찾아보려 하노라’라고 하는 고통과 방황, 주저함의 문학가를 가능하게 했다고 그는 설파한다. 루쉰에게서 다케우치는 초나라의 시인, 즉 굴원(屈原)과 동일한 비극의 탄생을 본 것이다.
  그는 또 문학과 정치의 관계, 문학과 혁명의 관계에서 쑨원과 루쉰에 주목하였고 여기에서 ‘영원한 혁명’을 루쉰 문학의 본질로 볼 수 있는 가능성을 개진한다. “쑨원에게서 영원한 혁명가를 보았던 루쉰은 영원한 혁명에서 자신을 보았던 것이다. 그것은 어떤 것인가. 그는 문단에서, 자신을 포함한 문단에서 ‘전사’없음을 보았던 것이다. … 혁명의 성공은 ‘혁명은 성공했다’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혁명을 믿고 ‘혁명이 성공하지 않은’ 현재를 파괴하는 것이다.”(139) 이에 대해 그는 루쉰 문학의 본질과 어딘가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래서 그는 단정하지 않는다. 의혹하고 날카롭게 해부해 들어가되 한두 마디로 단정하지 않으려는 것이 다케우치의 태도다. 그리고 의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쑨원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영원한 혁명이란 무엇인가  나에게는 난해한 문제이다.” 영원한 혁명을 루쉰 문학의 본질로 말하면서도 루쉰이 보았던 혁명의 대상, ‘악’이 무엇인지보다는 그가 그것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그 태도와 방법에 주목하는 것, 이것이 저자의 도저한 루쉰 읽기 ‘방법론’인 것이다.
  이러한 의혹과 부정, 부정의 부정, 다시 이어지는 의혹의 사유패턴은 다케우치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현란한 문체와 예리한 비평을 가능하게 한다. “비혁명가가 혁명을 입에 담을 때, 혁명가는 침묵한다. 침묵은 비판의 태도다. 침묵이 비판의 태도라고 하는 것은 침묵이 행동이라는 의미이다. 언어가 실재할 뿐만 아니라 언어가 없는 공간도 또한 실재한다고 믿는다. 언어를 가능케 하는 것은 동시에 언어의 비존재도 가능케 한다. 유가 실재한다면 무 또한 실재한다. 무는 유를 가능케 하지만, 유에게서 무 자신도 가능케 된다. 그것이 이른바 원초적 혼돈이다. ‘영원한 혁명가’를 그림자로 지닌 현재의 행동가가 탄생하는 근원이다. 그리고 문학가 루쉰이 계몽가 루쉰을 무한히 생성케 하는 궁극의 장소이다.”(175)
  다음과 같은 글은 전시의 와중에서 문학연구에 몰두했던 저자의 고충과 자신의 ‘자리찾기’를 위한 루쉰 끌어오기의 면모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문학이 탄생하는 장소는 항상 정치에 둘러싸여 있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문학의 꽃을 피우기 위한 가혹하고 격렬한 자연 조건이다. 허약한 꽃은 자라지 못하지만, 튼튼한 꽃은 긴 생명을 얻는다. 나는 그것을 현대중국의 루쉰에게서 본다.”(165) 전쟁이 끝나고 50년대 초, 다케우치는 다시 루쉰을 읽었다. “전쟁 체험으로부터 자신을 다시 구축하기 위해 전쟁에서 돌아온 후 나는 의식적으로 루쉰을 다시 한번 죽 읽었다. … 그때부터 나는 루쉰의 사고를 거쳤던 문제들을 다른 대상과 영역에 응용하기 시작하여 몇몇 평론을 썼다.” (〈現代中國論〉) 다케우치의 중국연구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역사 체험과 지식인 입장 간을 처리하는 방법이다.” 당시 대부분의 일본 지식인들이 서방이론을 기준으로 삼아 일본 사회의 구조를 재단하고 있을 때, 다케우치는 중국을 끌어다 그것에 의지해서 자신을 포함한 일본 지식제도 전반에 문제를 걸었다. 그는 먼저 그 자신이 전쟁 시기 동안 중국의 현실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 것을 반성하고, 중국의 현실을 접촉하지 못하였거나 왜곡하고 있는 일본 지식인들을 비판하였다. 그가 보기에 현대일본의 역사적 경험은 중국문제를 떠나 존재할 수가 없으며 중국에서 일본이 저지른 역사적 잘못을 제대로 처리해야만 비로소 일본의 미래가 개척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비판적 지식인으로서의 다케우치의 이러한 활동이 모두 그의 초기 역작인 《루쉰》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데에 이 책의 무게가 있다.
  한국에서 이제야 번역되어 나온 것은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루쉰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 온 역자의 유려한 문장으로 다케우치를 다시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기쁜 일이다. 그런데 끝으로 유감 하나, 다케우치의 해박한 중국론과 근대 일본 역사에 대한 진보적인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조선에서의 일본의 착오와 만행에 대한 반성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인가  일본 식민지배에 저항한 조선 민중에 대한 성찰은 없으면서, 태평양전쟁에서 실패한 후 미국의 지배하에 들어간 일본인들에게 루쉰의 저항 정신을 고취시키고자 하였던 저자의 태도에는 자국 중심주의에 갇혀있는 또 다른 일본 지식인상을 보는 듯하다. 그러므로 일본을 비판하기 위해 끌어온 저자의 중국연구는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중국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중국을 지나치게 이상화한, 대상화된 연구라고 하는, 그에 대한 일부 평단의 평가는 재음미할 필요가 있다.


유세종, 〈서광덕 옮김,《루쉰》〉, 《중국어문학》44집, 경산: 영남중국어문학회, 2004.12, pp.607-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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