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0.11.19
수정일
2010.11.19
작성자
현대중국문화연구실
조회수
608

(김미정 서평) 영화로 읽는 중국

《영화로 읽는 중국》



영화로 읽는 중국(한국중국현대문학학회)



한국중국현대문학학회 지음
서울: 동녘, 2006.9
                                                                                                                                                                 
                                                                                                                       김 미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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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에 중국현대문학학회에서 야심작 두 권을 잇달아 출판했다. 8월에 《중국현대문학과의 만남》이 나오더니, 9월에는 《영화로 읽는 중국》이 선을 보였다. 두 책의 공동 집필진 숫자만 총 50명, 사실상 현재 우리학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국현대문학 관련 연구자 절반 가까이 참가한 상당한 규모의 학술사업이다. 현재 우리 학계에 중국어문학 관련 학회의 수가 지나치게 많은 감이 있는 것에 비해 실질적인 학회활동이란 답보 혹은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는 상태인 점을 비추어본다면, 중국현대문학학회에서 내놓은 중국현대문학@문화 시리즈 (각주1-‘중국현대문학@문화’에서 @는 ‘and’ ‘as’ ‘at’의 의미를 다중적으로 사용했다고 밝히고 있다.)는 단일 학회의 학술활동으로서 단연 돋보이는 성과물이다. 그만큼 이 책들은 현재 중국현대문학학회 회원들의 전체적인 역량과 수준, 그리고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기획물이었다. 이로써 중국현대문학학회는 최소한 두 가지 사실을 증명해냈다. 첫째 중국현대문학학회가 학술계에서 자기 검증을 위한 시스템을 가동할 만큼 성장했다는 사실, 둘째 중국현대문학학회는 살아 움직이는 학회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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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하필 영화인가  당연히 있음직한 이런 질문은 당면 문학도들의 정체성 문제와 관련 깊다. 자고로 문학도들의 탐구의 대상은 문자였다. 문자로 이루어진 인간과 세계의 이해에 관계된 무언가 의미있는 산물, 그것을 미학성을 전제로 말한다면 문학일 것이고, 사실의 기록으로 보자면 역사일 것이며, 사유의 방식을 놓고 말하자면 철학일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기본적으로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전통적인 문사철이란 어느 범주에서도 품기 어려운 생생한 시각성과 청각성을 전제로 우리의 감각을 자극한다. 전통적인 인문학이 장시간의 특수한 훈련과정을 거쳐야 나름대로의 해독과 감수능력을 확보할 수 있는 해석과 사유의 체계인 것에 비해 영화는 생래적인 보고 듣는 능력만으로도 충분히 오감을 만족시킬 수 있는 보다 부담없는 대중적 매체인 것이다. 그것은 볼거리와 흥밋거리를 제공함으로써 대중들의 욕구에 부응하지만, 많은 경우 대중들 자신에 의해 ‘보고 지나치는’ 일회성의 오락거리로 자리 매겨진다. 그러다 보니 문자를 통해 세계를 재현하고자 하는 다른 인문학에 비해 훨씬 직접적으로 대중적 상업성에 지배받는다. ‘오락성’과 ‘상업성’, 이야말로 영화의 성격을 규정짓는 핵심 코드인 셈이다.
  그런데 이런 영화가 환영받는다. 전통적인 인문학이 위기를 지나 빈사상태에 헤매고 있는 지금, 영화는 인문학의 굼뜸과 무거움을 조롱하며 민활하게 자신의 영역을 확장한다. 수많은 대중들의 환호 속에 자신의 입지를 다진 영화는 이제 다양한 방면으로 변신 중인 듯하다. 다양하게 분화하는 현대사회만큼이나 다양한 문화적 수요가 생겨나고 이를 민활하게 방영하는 영화가 생겨남으로써 영화는 명실 공히 현대사회 문화의 총아가 된 것이다. 지나치게 비대해진 상업 논리와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는 자본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적 제약으로 말미암아 영화의 다양성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영화전문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영화 자체는 분명 현대사회에 가장 적절히 대응하는 장르임을 증명하며 한 사회의 문화 형성에 막강한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영화 안팎의 이런 조건들이 많은 문학연구자들로 하여금 ‘영화’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원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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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로 읽는 중국》은 제목 그대로 두 개의 핵심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바로 ‘영화’와 ‘중국’, 둘 다 지금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열렬히 주목받는 대상이다. 그런데 ‘영화로 읽는 중국’이란 제목은 아무래도 그 중점이 ‘중국’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중국이란 대상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로써 영화가 쓰여지고 있는 것이다.
  보통의 중국문학도에게 ‘중국’만큼 혼란스럽고 다양한 이미지가 중첩된 이름은 없다. 수십 년 동안 중국서적을 들고 다니며 듣고 배우고 공부했건만 중국에 대해 명확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중국전문가는 많지 않다. 아마도 지금까지 우리 중국어문학계에서의 교육과 학습이 근본적으로 우리의 현실 속에서 중국의 정신을 연구하고 비판하며 수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로 중국의 언어나 협소한 의미로 해석된 문학의 습득에 주력하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즉 사회가 중국에 대해 올바로 알고 싶어 하고, 학생들은 취업이란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 중국을 알아야만 하는데 기존 중국어문학계의 교육목표나 방법은 이런 요구에 부응하기가 무척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임기응변적이나마 교수방법의 개선이 필요했다. 여기서 모색된 것 가운데 하나가 영화이다. 10여년 전부터 영화를 이용한 강의는 눈에 띄게 늘어갔고, 학생들의 호응은 폭발적이었다. 가장 환영받는 두 대상의 결합, 누가 봐도 바람직한 결과가 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수단 혹은 도구 자체가 목적화됐다. 영화를 통해 ‘중국’이나 ‘중국문화’라는 정보를 전달하고자 했다면 그에 합당한 방법 내용 주제 관점이 고민되어야 했다. 그렇지만 실제 강의는 시각과 깊이를 지니지 못하고 중국영화에 대한 단순한 설명 혹은 인상주의적 감상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학생들의 일반적인 호응과는 별개로 영화와 중국의 상호 교호작용은커녕, 영화에 대해서도 중국에 대해서도 의미있는 객관적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반성이 아프게 다가왔다.
  그런 면에서 《영화로 읽는 중국》은 분명 획기적이다. 무엇보다도 필진 18명이 나름대로 영화와 관련된 연구를 했거나 하고 있는 중이다. 또 상당수는 영화를 이용한 강의의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영화를 이용한 중국읽기의 장점과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즉 연구의 경험과 대학 강단에서 마주쳤던 교훈이 이 책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산재되어 있던 개별적 경험과 반성이 집체적 결과물로 재탄생될 수 있었던 것은 기획의 힘이다. 개별적 경험과 역량을 끌어모아 축적된 성과로 가시화하고 이슈화 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살아있는 학회의 역할이다. 이런 점에서 중국현대문학학회의 저작활동은 다른 학회에 훌륭한 본보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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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로 읽는 중국》의 기본적인 성격에 대해 임대근은 책의 프롤로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보는 행위는 눈으로 이뤄지는 생래적인 것이다. 그러나 읽는 행위는 머리를 통해 이뤄지는 의식적인 것이다. 읽는 행
      위는 나아가 적극적인 해석행위를 의미한다. 물론 그 해석은 결국 자기가 서 있는 위치에서의 적용과 동떨어질 수 없
      다. …(중략: 인용자)… 이렇듯 영화를 ‘읽는’다는 말은 영화를 단순히 오락거리로서만 파악하지 않고 인간과 세계의 모순과 현실을 담고 있는 해석 가능한 텍스트로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각주2- 임대근: 〈영화와 중국을 둘러싼 경계들에 관한 짧은 보고〉 책 21-22쪽.)

  이 말 속에는 그간의 논의와 경험이 담겨있다. 일회용 오락거리로서 영화를 대하고자 하는 대중(교육대중을 포함하여)에게 영화는 단순히 심심풀이를 위한 오락거리가 아니라 한 사회 구성원의 삶이 녹아든 문화의 산물임을, 그래서 그것은 의식적으로 탐구하는 과정을 거쳐 해석될 수 있는 텍스트임을 역설하는 머리말은 영화로써 중국을 이해하고자 하는 기획의 배경과 의도를 설명한다.
  이를 위하여 이 책은 4개의 커다란 주제를 내세우고 있다. 첫째, 성과 사랑, 섹스와 젠더 이야기 둘째, 장르와 예술, 문학과 영화 이야기 셋째, 역사와 권력, 혁명과 민족 이야기 넷째, 하나이면서 여럿인 중국, 즉 중국 각 지역의 삶과 문화를 담아내는 이야기 등. 여기에 ‘영화와 중국을 둘러싼 경계들에 관한 짧은 보고’라는 프롤로그와 ‘말(馬)의 기호학으로 읽어낸 진시황 영화 다섯 편’이란 에필로그가 더해져 자칫 산만해질 수 있는 책의 짜임새를 조여준다. 각각의 주제와 에필로그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책의 구성은 전체적으로 중국적인 문화 콘텐츠를 규명해나가고자 하는 의도를 지니고 있는 듯하다. 여기에 부록으로 본론에서 거론된 영화감독들을 소개하는 글까지 달려, 영화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굳이 중국영화사에 대한 지식이 없이도 중국영화의 전체적인 경향을 살펴볼 수 있게 짜여져 있다.
  본론에 수록된 16편의 글은 각각 독립되어 있다. 때문에 때로는 집필자 각각의 기호와 관심에 따라 서술 내용에도 편차가 있고, 경우에 따라선 대주제에서 일탈하고 있는 듯한 느낌도 있다. 한마디로 후지이 쇼조의 《현대중국, 영화로 가다》나《네 도시 이야기》에서 볼 수 있는 문체와 서술방식의 일관성과 관점의 명쾌함은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점은 이 책의 단점일 수도 장점일 수도 있다. 중국에 대해 큰 밑그림을 그리고 중국을 움직이는 실체로 잡고 싶었던 사람에게 이런 산만한 구성은 분명히 단점일 터이다. 그렇지만 같은 텍스트(영화)에 대해 이렇게 많은 시각과 관심이 교차할 수 있고 그에 따라 글의 깊이와 폭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사람에게 이 책은 현재적 사실에 대한 하나의 계시일 것이다. 중국은 하나의 관점, 하나의 틀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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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민해야 할 문제는 또 남아있다. 대중성을 확보하여 접근하기 용이한 영화, 하지만 이 책의 주독자층으로 상정된 학부의 대학생들은 어떤 중국영화를 보았을까  이들은 1970년대 이소룡의 무술영화는 고사하고 ‘붉은 수수밭’ ‘패왕별희’ 같은 중국의 제5세대 감독들에 의해 전세계에 알려진 1980-90년대 중국영화도 모른다. 이들이 본 중국영화라곤 국적불명의 ‘칠검’ ‘야연’ ‘영웅’ 심지어는 ‘게이샤의 추억’(상당수 학생들은 이 영화를 중국영화의 범주로 생각한다)일 가능성이 높다. 영화의 소재와 성격도 다양해지고 기술적 완성도도 달라진 지금 학생들은 굳이 중국영화를 찾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중국영화는 볼거리가 떨어지고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여 우리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고민해야 한다. 인문학의 고전들에 대한 지식과 원저에 대한 강독이 왜 학생들에게 외면당했는가  그것은 오로지 부박한 시대와 풍조 탓인가  그것을 우리 자신의 문제로 돌아보자면, 인문학이 상품가치가 없어서라기보다는 인문학 교수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비판정신으로 “나를 통해 체험되고 나를 통해 다시 살아난” 고전사상의 생명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채 단순한 문장해석으로 연명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하나의 텍스트로 간주한다면, 우리는 동질의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우리는 영화에 대해, 중국에 대해 얼마만큼 절실하게 이해하고 있는가  그것은 우리의 연구와 강의와 삶의 체험을 통해 다시 살아나고 있는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총체적인 조망능력, 생생한 비판정신, 미학적인 안목들을 충분히 배양했는가  결국 우리의 중국읽기는 그것이 영화이건, 고전원저이건, 역사 자료이건, 정치 경제제도이건 이런 기본적인 소양과 노력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영화를 단지 학생대중에게 영합하는 손쉬운 도구로 취급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 자신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김미정, 〈한국중국현대문학학회 지음,《영화로 읽는 중국》〉, 《중국어문학》48집, 경산: 영남중국어문학회, 2006.12, pp.605-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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