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학교 현대중국문화연구실 옮김, 지식을만드는지식 출판사 펴냄
"현대 중문문학 대표작품 시리즈" (3차분)
- 타이완과 홍콩 근현대의 목소리
《다시 종려나무를 보다 又見棕櫚, 又見棕櫚》, 우리화 於梨華 지음, 고혜림 옮김, (서울: 지식을만드는지식, 2013.12)
《침몰하는 섬 沈淪 1,2》, 중자오정 鐘肇政 지음, 문희정 옮김, (서울: 지식을만드는지식, 2013.12))
《이리 狼》, 주시닝 朱西甯 지음, 최말순 옮김, (서울: 지식을만드는지식, 2013.12))
《침묵의 섬 沈默之島》, 쑤웨이전 蘇偉貞 지음, 전남윤 옮김, (서울: 지식을만드는지식, 2014.2))
《양팔 저울 天平》, 타오란 陶然 지음, 송주란 옮김, (서울: 지식을만드는지식, 2014.2))
부산대학교 현대중국문화연구실(현문실)이 기획한 ‘현대 중문문학 대표작품 시리즈’의 제 3차 시리즈 5종이 출간되었다. 주로 젊은 연구자들로 구성된 현문실은 중국 대륙을 넘어서 타이완과 홍콩, 그리고 세계 각지에 산재해 있는 화인 집단의 문학과 문화에 대한 소개 및 연구를 목적으로 활동 중이다.
이번에 발간된 제 3차 시리즈는, 2011년에 발간된 7종과 2012년에 발간된 6종에 이어서, 타이완과 홍콩 그리고 화인화문문학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중문문학의 다양한 면모와 성취를 발견할 수 있게 해주는 총 5종의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작품은 1895년 이래 약 50년에 걸친 타이완에 대한 일제의 식민 지배라든가 1997년 과거 150여 년에 걸친 영국 식민 지배로부터 중국으로의 홍콩 반환과 같은 근현대의 굵직한 사건들을 다루는가 하면, 물질만능주의와 미국 유학 열풍 등 한국 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사회적 이슈들을 냉정하게 분석하기도 하고, 또 그 속에서 살아가는 개개인의 욕망과 사랑에 대한 각각의 독특한 시선을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아마도 독자들은 이를 통해 타이완과 홍콩 및 세계 각지의 화인들이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쳤으며, 어떤 동경과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화(於梨華, 1931~ )의 《다시 종려나무를 보다》는 1967년에 발표된 그녀의 대표작으로, 1960년대 타이완의 미국 유학 및 이주 열풍을 통해 화인 디아스포라가 겪는 정체성의 혼란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작가 자신이 이미 1950년대에 미국 유학을 하고 고향에 돌아온 후 미국과 타이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존재임을 경험한 바 있는데, 그녀는 바로 이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을 그저 기회의 땅으로만 여기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과장되고 허구적인 이미지에 비판을 가한다. 이와 동시에 작가는 미국에 정착한 뒤에도 여전히 이방인으로 존재하는 화인 디아스포라들을 통해서 디아스포라의 고통과 다문화 사회의 문제점들을 고민한다.
중자오정(鐘肇政, 1925~ )의 《침몰하는 섬》은 타이완에 대한 일제의 식민지배 50년을 그린 ‘타이완 사람 삼부작’의 첫 번째 작품으로 1968년에서 출판되었다. 소설은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청나라가 타이완을 일본에 할양한 때로부터 시작한다. 작가는 타이완에 정착하여 살아가던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일본과 맞서 싸웠는지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이를 통해 타이완 사람들이 가진 불굴의 의지와 강인한 생명력을 표현한다. 다른 한편으로 작품에는 외부의 침략과 식민을 거친 다양한 에스닉으로 구성된 타이완이 중국 대륙과 분리되어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해가는 과정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비슷한 시기에 일제의 식민통치를 겪었던 한국의 상황과 비교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주시닝(朱西甯, 1926-1998)의 《이리》는 그의 창작 시기와 작품 경향, 그리고 인간에 대한 그의 사고를 잘 보여주는 다섯 작품을 엄선한 소설선이다. 군인 출신인 작가는 1950년대 반공문학이 주도하던 시기에 등단하여 커다란 주목을 받았다. 이후 그는 오랜 기간 창작과 편집에 종사하면서 꾸준히 자신의 영역을 넓혀나가며 변화를 추구했고, 반공문학 뿐만 아니라 귀향소설(回鄕小說), 모더니즘적 소설 등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창작했는데, 그러면서도 그의 작품에는 언제나 일관되게 인간 자체에 대한 성찰이 드러났다. 《이리》에 게재된 다섯 작품에는 낙후한 봉건문화의 허위를 비판하는 동시에 개별 인물의 욕망을 치밀하게 그려낸 초기 작품에서 부터 실험적인 형식과 탁월한 언어 조탁이 돋보이는 모더니즘 계열의 작품까지 그의 인간에 대한 믿음과 문학에 대한 열정이 녹아있다.
쑤웨이전(蘇偉貞, 1954~ )의 《침묵의 섬》은 주인공이 또 다른 자신을 만들어 그녀에게 이상적인 인생을 부여하고 이를 통해서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쑤웨이전은 타이완의 대표적인 페미니즘 작가이자 모더니즘적 작가로, 《침묵의 섬》에서는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사랑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고 완성해 나가는 여성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그녀의 대담하면서도 섬세한 필치는 주인공의 의식과 욕망을 효과적으로 드러내준다. 특히 실재와 상상,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넘나드는 서술은 인간의 내면에 관한 깊이 있는 성찰을 이끌어낸다.
타오란(陶然, 1943~ )의 《양팔 저울》은 인도네시아 화교 출신으로 청소년기에 베이징으로 가서 유학을 한 뒤 나중에 다시 홍콩인이 된 작가 타오란이 말하는 홍콩인의 사랑 이야기가 담긴 소설선이다. 이 책에 수록된 세 편의 중편소설은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직전에 창작된 것들로, 당시 혼란스러웠던 홍콩 사회와 홍콩 사람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그 중에서도 대표작인 〈양팔 저울〉은 홍콩 젊은이들의 결혼에 대한 생각이라든가 이민을 도피의 수단으로 여기는 행동을 통해 홍콩의 미래에 대한 홍콩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를 보여주고 있다. 이 밖에도 홍콩 사회의 배금주의나 소외와 같은 어두운 면들을 통해 현대적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과 사랑을 재조명한다.
‘현대 중문문학 대표작품 시리즈’를 통해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홍콩과 타이완, 그리고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화인 작가들의 작품은 하나하나가 그들의 삶이자 기억이다. 그들은 중문이라는 공통된 언어로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으나, 자신이 처한 환경 하에서 자신만의 창작세계를 구축했다.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배경과 경험을 가진 중문문학 작가들을 단지 몇 마디의 말로 정의하거나 범주화하는 것은 참으로 무모한 일일 것이다. 현문실의 젊은 연구자들은 중문문학이 중국 대륙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지역의 서로 다른 목소리가 끊임없이 대화하는 상상의 장이라고 보며, ‘현대 중문문학 대표작품 시리즈’가 이러한 인식을 확산시키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번 시리즈의 출간에는 현문실과 지식을만드는지식의 노력 외에도 타이완문학관의 리루이텅 관장, 타이완 둥화대학의 쉬원웨이 교수, 하버드대학의 데이비드 왕 교수, 부산대학교의 김혜준 교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협력과 지지가 있었다. 그리고 당연한 말로 이번 시리즈의 출간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람들은 바로 해당 작품들을 창작하고 한국에서의 출판을 허락해 준 작가들 우리화, 중자오정, 주시닝, 쑤웨이전, 타오란 및 이미 고인이 된 일부 작가의 유족이다. 아무쪼록 그분들의 성취와 관대함 및 옮긴이들의 노력이 더 많은 독자들에게 전해지기를 기대한다.
2014.02.19 문희정 작성
cccs@pusan.ac.kr